몇 달 전 일인데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정리가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서 적어둔다.
연말 평가가 끝나고 팀원 한 명이 DM을 보냈다. 통화 가능하냐고.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달라고 했더니, 자기 인상률 얘기라고 했다. 일 년을 일했는데 이만큼밖에 안 올랐다고. 그러면서 물었다. 내가 그렇게 일을 못했냐고.
나는 그 사람 평가를 좋게 썼다. 근거도 붙였다. 그 분기에 결제 정산 쪽 이슈를 스스로 파고들어서 검증한 게 있었는데 그게 정말 괜찮은 작업이었고, 그렇게 적어서 보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근데 그게 결과에 반영이 안 됐다.
첫 번째로 걸렸던 것
그 사람이 물어본 건 평가가 아니라 숫자였는데, 나는 평가밖에 답할 게 없었다.
평가는 내 몫이고 보상은 아니다. 나는 일에 대해 쓰고, 그게 어떤 계산을 거쳐 숫자가 되는지는 모른다. 이건 사실이고 조직도상으로도 맞는 얘기다. 그래서 그렇게 설명했다. 그 부분은 내 프로세스가 아니라고, 정확히 알고 싶으면 HR에 직접 물어보는 게 맞다고.
말하면서도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평가와 보상은 하나다. 분리된 시스템이라는 건 조직 안쪽 사정이지 밖에서 보이는 게 아니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과 낮은 숫자를 동시에 받으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나니까, 의심의 대상도 나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었는데, 사실이 위로가 안 되는 상황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두 번째로 걸렸던 것
내가 실제로 한 일이 있다. 좋은 평가를 근거와 함께 냈고, 그건 그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근데 그게 결과에 안 나타나니까, 아무것도 안 한 것과 구분이 안 된다.
나는 그 사람한테 뭘 썼는지 말해줄 수 없었다. 평가 내용은 공유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쁘게 쓴 건 없다”까지만 말했다. 이 말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믿어달라는 말이랑 똑같다.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일이 꽤 많다. 위로 올린 의견, 회의에서 막아준 것, 누구 이름이 안 나가게 정리한 것. 잘 되면 안 보이고 안 되면 안 한 걸로 보인다. 나는 이걸 원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는 건 다른 얘기였다.
세 번째, 이게 제일 불편했다
대화 중간에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회사에서 믿을 사람은 형밖에 없다고.
그 자리에서는 고맙게 들렸다. 근데 나중에 다시 생각하니까 이건 칭찬이 아니었다.
조직을 못 믿고 개인을 믿는다는 건, 신뢰가 시스템에서 사람으로 넘어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권한이 없다. 나는 그 신뢰를 받을 수는 있는데 갚을 수단이 없다. 이런 구조는 결국 깨진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지탱이 안 되니까.
그리고 깨지면 그때는 조직이 아니라 내가 배신한 게 된다. 조직은 원래 못 믿었고, 나는 믿었으니까.
이건 좋은 매니저가 되면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반대다. 개인이 잘할수록 시스템의 결함이 개인 신뢰로 메워지고, 그만큼 시스템은 고쳐질 이유가 없어진다. 나는 이 얘기의 결론을 아직 못 내렸다.
그리고 여기서 갈렸던 것
대화 후반에 그 사람이 이런 부탁을 했다. 이 얘기를 HR에 전해달라고.
나는 거절했다. 인상률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건 내 권한 밖이고, 그건 각자가 직접 얘기하는 게 맞다고. 지금도 그 판단 자체는 맞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인상률은 회사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고, 난 그것을 직접적으로 건의해서 조율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근데 나중에 보니 그 부탁 안에 두 개가 붙어 있었다.
하나는 인상률에 대해 나서달라는 것. 이건 권한 밖이 맞다. 다른 하나는 팀원들의 이런 불만이 있다는 정보를 위로 전달해달라는 것. 이건 내 일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팀원들의 불만의 신호는 그 자체로 조직이 알아야 할 정보고, 그건 인상률 협상이랑 다른 얘기다.
그 자리에서는 두 개가 한 문장으로 왔고 나는 한 번에 거절했다. 나눠서 대응할 여유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나눌 생각을 못 한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이건 아직 정리가 안 된 부분이다.
이 부분은 계속해서 안고 가야할 숙제같다.
첫 글에서 쓴 얘기랑 이어진다
앞에 글로벌 팀 얘기를 쓰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내 기본값이 남의 기본값일 거라고 생각한 게 제일 큰 실수였다고. 이건 그 문장의 두 번째 사례인데, 이번엔 걸린 게 일정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몇 가지가 다르게 읽혔다.
같은 숫자가 같은 무게가 아니다. 나한테 인상률은 인정의 신호에 가깝다. 부양할 가족이 여럿인 사람에게 그건 다음 달 가계다.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았는데 대화 중에는 계속 평가 얘기로 받고 있었다. 같은 화면을 보면서 다른 걸 보고 있었던 거다.
말의 온도도 달랐다. 그 사람은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 호칭 안에서 오가는 대화의 기본값은 가족 어법에 가깝다. 그 안에서 “그건 내 프로세스가 아니다”는 정직함이 아니라 선 긋기로 들린다. 나는 사람과 시스템을 분리해서 얘기하는 게 가장 정확하고 예의 있는 방식이라고 배웠는데, 그게 어디서나 그렇게 읽히는 건 아니었다.
내 대응 방식 자체가 문화적이었다는 걸 이때 알았다. 감정과 절차를 분리하고, 권한 범위를 명확히 하고, 올바른 채널을 안내하는 것. 이건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이지 보편적인 방식이 아니다.
한 가지 자신 없는 것
대화 도중에 나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내 인상률도 낮다는 말도 했다. 그때는 진심이었고, 그 사람도 그 말에 좀 풀린 것 같았다.
근데 그게 맞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매니저가 아래로 좌절을 공유하면 같은 편이라는 느낌은 생긴다. 대신 그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기준점이 하나 없어진다. 위에 있는 사람도 어쩔 수 없다는 걸 확인시켜준 셈이니까. 연대를 준 대신 안정감을 가져간 거라면 좋은 거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건 지금도 판단이 안 선다.
그래서 남은 것
이후로 진행된 건 없다. 그냥 그렇게 끝났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면 다르게 할 게 있나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별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했고 나머지는 내 권한 밖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시스템 안에 있는 한 명의 실무자다. 내 숫자도 내가 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실수담이 아니다. 뭘 잘못했는지 찾아내면 다음에 안 그럴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층위가 다른 문제였고, 나는 그 층위에 접근할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근데 그게 편해지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남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일의 일부인 것 같다. 권한 밖이라는 말은 설명은 되는데 해결은 안 된다.
여기까지가 지금 정리할 수 있는 전부다. 나중에 다르게 보이면 그때 다시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