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한 번 정리하고 싶었던 얘기다.
글로벌 팀과 일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고 대답하게 되는데, 이 대답이 늘 마음에 안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세상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지 않는 게 어디 있나.
그래서 몇 년치를 되짚어보면서, 그 “나쁜 점”이라는 게 정확히 어느 층위에서 생기는지를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쓰면, 내가 처음에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대체로 문제가 아니었다. 시차나 언어 같은 것들. 그건 그냥 불편한 거고 해결책도 대충 다 나와 있다. 진짜 비용은 다른 데 있었다.
캘린더가 다르다
제일 먼저 깨진 건 시간에 대한 감각이었다.
무슬림 팀원들과 일하기 전까지 나는 라마단을 그냥 상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낮에 금식하는 기간. 그 정도. 근데 그게 실무에 들어오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일단 근무 시간대가 바뀐다. 새벽에 식사하고 자니까 오전 컨디션이 평소 같지 않고, 오후로 갈수록 더 떨어진다. 어떤 나라는 아예 공식 근무시간이 단축된다. 그리고 라마단이 끝나면 Eid가 온다. 이건 우리로 치면 설날에 가깝다. 며칠씩 아무도 없다. 게다가 이슬람력은 태양력보다 짧아서 매년 11일씩 당겨진다. 작년에 4월이었으면 올해는 3월이다. 고정된 공휴일처럼 외워둘 수도 없다.
문제는 내가 이걸 몰랐다는 게 아니다. 알고 나서도 로드맵에 그 변수를 안 넣었다는 거다.
1년에 한 달 넘게, 팀의 일부는 실질 처리량이 달라진다. 그런데 내 스프린트 계획에는 그런 항목이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잡고, 평소처럼 안 되는 걸 보면서 뭐가 문제인지 찾고 있었다. 사람 문제도 아니고 프로세스 문제도 아니었는데 계속 사람과 프로세스만 들여다봤다.
이건 배려의 문제로 자주 이야기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려는 그 사람을 존중하느냐의 문제고, 이건 그냥 계획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팀의 가용 시간을 잘못 계산한 PM은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계산을 틀린 거다. 나는 계산을 틀렸었다.
비동기는 동기를 대체하지 못한다
이게 이 글에서 제일 하고 싶은 얘기다.
리모트 협업 얘기가 나오면 거의 자동으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 답으로 나온다. 문서로 남겨라, 결정 근거를 적어라, 회의를 줄여라. 나도 오랫동안 이게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대체로는 맞다고 생각한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문서는 쌓이는데 속도는 안 나고, 다들 성실하게 일하는데 결과물이 예상과 다르게 나온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한번은 나이지리아에 있는 팀원과의 싱크를 위해 중간 타임존인 파키스탄 쪽에 커뮤니케이션을 거치는 구조를 뒀다. 시차를 반으로 나누면 접점이 생기니까. 논리적으로는 맞는 설계였다.
근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 굴러갔다.
브리지를 두는 건 지연을 없애는 게 아니다. 홉을 하나 더 늘려서 지연을 나눠 갖는 거다. 이게 이득이 되려면 조건이 하나 붙는다. 서비스의 변화 속도가 그 지연보다 느려야 한다. 한 번 정한 게 일주일쯤 유효한 제품이면 하루 지연은 아무것도 아니다. 근데 우리 쪽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 정한 게 내일 바뀐다. 그러면 결정이 반대편에 도착할 때쯤엔 그 결정이 서 있던 전제가 이미 없어져 있다.
그리고 지연보다 더 큰 게 있었다. 컨텍스트가 깎인다는 것.
문서화는 정보를 옮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옮겨진다. 근데 왜 그게 지금 중요한지, 이 중에서 뭘 포기해도 되고 뭘 포기하면 안 되는지, 이게 다음 분기의 어떤 그림과 연결되는지는 잘 안 옮겨진다. 그건 문장에 담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 머릿속에 쌓여 있는 거니까.
그래서 서비스 이해도가 조금만 차이 나도 결과물이 벌어진다. 요구사항을 잘못 읽어서가 아니다. 요구사항은 정확히 읽었는데, 그걸 판단할 때 쓰는 배경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 차이는 홉을 하나 지날 때마다 곱해진다.
정리하면 브리지는 지연도 못 줄이고 컨텍스트 손실도 못 줄인다. 둘 다 한 단계씩 더한다. 나는 그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비동기는 동기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나온 거지, 동기를 대체하려고 나온 게 아니다. 회의를 줄이는 도구지 없애는 도구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여전히 얼굴 보고 30분 얘기해야 풀린다. 문서 열 장보다 통화 한 번이 빠른 순간이 분명히 있고, 그 순간을 알아보는 게 오히려 리모트에서 더 중요한 능력인 것 같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비동기가 잘 굴러가려면 전제 조건이 꽤 많다. 안정적인 인터넷, 방해받지 않는 근무 환경, 긴 글을 쓰고 읽는 데 드는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 이게 모두에게 기본값은 아니다. 나한테 기본값인 것들이 남한테도 기본값일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같은 화면을 봐도 다른 걸 본다
세 번째는 좀 다른 층위다. 협업이 아니라 제품 쪽.
비슷해 보이는 서비스라도 나라마다 실무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꽤 다르다. 같은 화면을 띄워놓고 얘기하는데 서로 다른 걸 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제일 크게 벌어지는 건 컴플라이언스 감각이다. 한국은 규제가 촘촘한 편이고, 그래서 여기서 오래 일한 사람은 규제를 기본값으로 깔고 설계한다. 실명 확인, 동의 절차, 데이터 보관 기간, 이런 게 자연스럽게 화면 흐름 안에 들어가 있다. 굳이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거니까.
근데 그게 원래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건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감각이다. 다른 데서 일해온 사람에게는 그 절차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나” 로 보인다. 반대로 그쪽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나한테는 위험해 보인다. 둘 다 틀린 게 아니라 각자 맞는 환경에서 살아온 거다.
UX도 비슷하다. 여기서는 불친절해 보이는 화면이 저기서는 충분히 명확하고, 여기서 당연한 단계가 저기서는 불필요한 마찰로 읽힌다. 이걸 취향 차이로 이해하면 계속 부딪힌다. 취향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어온 서비스 환경의 총합이다.
그래서 뭐가 남았나
세 개를 늘어놓고 보니 결국 같은 얘기다.
글로벌 협업의 비용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지 않다. 컨텍스트에 있다. 시간에 대한 컨텍스트, 신뢰에 대한 컨텍스트, 제품에 대한 컨텍스트. 그리고 컨텍스트 차이는 프로세스로 흡수되지 않는다. 좋은 도구를 쓰고 문서를 잘 써도 안 줄어드는 부분이 남는다.
이걸 알기 전까지 나는 문제가 생기면 프로세스를 고쳤다. 회의 형식을 바꾸고, 템플릿을 만들고, 문서 규칙을 정했다. 어느 정도는 나아졌지만 근본적으로는 안 나아졌다. 애초에 프로세스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럼 나쁘기만 했냐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경험 덕에 얻은 게 훨씬 크다. 특히 사람을 보는 기준이 꽤 많이 바뀌었는데, 그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에 따로 쓰려고 한다.
무엇이 맞았고 무엇이 틀렸는지로 정리하면 이렇다.
맞았던 것: 문서화는 필요하다. 비동기는 유효한 도구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일하면 판단의 폭이 넓어진다.
틀렸던 것: 문서화가 컨텍스트를 옮겨줄 거라고 생각한 것. 비동기가 동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시차를 구조로 우회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내 기본값이 남의 기본값이기도 할 거라고 생각한 것.
마지막 게 제일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