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세스는 매니지먼트가 아니었다

매니지먼트

이른 연차에 리드를 맡고 지금까지 사수 없이 팀을 이끌어오면서, 프로세스를 매니지먼트로 착각했던 얘기.

예전에 저장해둔 글이 하나 있다. Chris Kiehl이라는 개발자가 업계 6년을 지나며 바뀐 생각, 새로 생긴 생각, 그대로인 생각을 정리한 목록이다. 처음 읽었을 때 꽤 많은 항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니 나도 비슷하게 6년쯤 됐다.

그 사람은 개발자로서 그 목록을 썼다. 나는 개발로 시작해서 PM으로 넘어왔고, 어쩌다 보니 꽤 이른 연차에 리드를 맡았다. 그 뒤로 지금까지 위에 사수라고 부를 만한 사람 없이 팀을 이끌어왔다. 같은 목록인데 내 자리에서 다시 읽으니 걸리는 항목이 달랐다. 개발 쪽 얘기는 빼고, 걸린 두 개만 적어둔다.

복잡성을 다룰 줄 아는 건 자랑거리가 아니다

원글에 이런 취지의 항목이 있다. 복잡한 걸 관리하거나 이해하는 데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

나는 이걸 읽고 내가 도입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개발 흐름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스프린트를 넣고, 애자일을 들여왔다. 하나씩 넣을 때마다 이제 좀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들여온 건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프로세스였다.

그게 배포 품질을 올려주거나 팀 수준을 끌어올려주지는 않았다. 배포는 여전히 수시로 밀렸다. 버그는 원래도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프로세스를 넣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뀐 게 있다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팀원들이 스크럼을 제대로 안 따라오거나 티켓 관리를 대충 하면 화가 났다. 프로세스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고, 프로세스를 지켰냐 안 지켰냐가 새로운 기준이 돼버린 거다.

결국 나는 복잡한 걸 하나 더 만들어놓고, 그걸 관리하는 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는 귀하다

원글의 다른 항목.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는 정말 귀한데, 경력 내내 거의 못 봤다는 것.

원글 저자는 이걸 받는 쪽에서 썼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좀 다른 데서 걸렸다. 나도 거의 못 봤다. 그런데 나는 받는 쪽이 아니라 그걸 해야 하는 자리에 일찍 앉았다.

본 적이 없으니 따라 할 모델이 없었다. 그래서 보이는 걸 가져왔던 것 같다. 스프린트나 애자일은 책에도 있고 문서로 정리돼 있고 도입했다고 말할 수 있는 형태가 있다. 좋은 매니지먼트는 그런 형태가 없다. 옆에서 봐야 배우는 종류인데 옆에 아무도 없었다.

앞 항목이랑 이어서 보면 결국 같은 얘기다. 프로세스보다 중요한 건 팀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팀이 어디를 보고 있게 만드느냐. 같은 스프린트를 돌려도 팀이 같은 곳을 보고 있으면 굴러가고, 아니면 의식만 남는다.

그리고 하나 더 위에 있는 게 있다. 회사가 어떤 흐름을 갖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팀이 만드는 건 결국 프로덕트고, 프로덕트는 팀을 닮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팀은 회사를 닮는다. 팀 안에서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아도 회사가 다른 걸 중요하게 여기면 결국 그쪽으로 끌려간다.

지금

6년쯤 지나서 바뀐 건 이 정도다. 매니지먼트를 프로세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위에 팀이 어디를 보느냐가 있고, 또 그 위에 회사가 어디를 보느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에 두 가지를 더 적어둔다.

하나는, 결과를 평가받는 기준은 결국 프로덕트라는 것. 스프린트를 얼마나 잘 돌렸는지, 티켓이 얼마나 정돈돼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묻는 건 뭐가 나왔냐다. 멋들어진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프로덕트가 나아졌으면 프로세스가 잘 맞았던 거고, 아니면 그냥 의식이었던 거다.

다른 하나는, 그때의 상황과 그때의 기준은 나중에 내 방어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

일할 때는 늘 이유가 있다. 사람이 부족했고, 일정이 급했고, 위에서 방향이 자주 바뀌었고, 그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 순간엔 다 맞는 말이다. 근데 시간이 지나서 결과를 볼 때 그 이유들은 같이 따라오지 않는다. 남는 건 프로덕트가 어떤 상태인지뿐이고, 그걸 보는 사람은 그때 어떤 조건이었는지 모른다. 알더라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나도 남의 결과를 볼 때 그렇게 본다.

그리고 그때의 기준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그 시점에는 충분히 괜찮다고 판단했던 게, 나중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해 보인다. 조직도 커지고, 보는 눈도 높아지고, 나 자신도 달라진다. 그러면 예전의 판단은 그때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고 지금 기준으로 다시 평가받는다.

그러니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일 수는 있어도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상황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되고, 지켜줄 수 있는 건 결과물이나, 적어도 그 판단을 왜 그렇게 했는지 남겨둔 기록 정도다. 이건 앞에 다른 글에서도 비슷하게 적었는데, 매번 다른 자리에서 같은 결론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 나한테 꽤 중요한 얘기인 것 같다.

사수가 있었으면 더 빨리 알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건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