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 첫날에 밀린 슬랙을 읽었다.
며칠 사이에 처리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크릿 이전, 헬스체크, 관측. 몇 주 동안 devops에 부탁했는데 계속 안 됐던 건까지 같이 끝나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다 됐네, 하고 확인했다.
그때 든 감정이 고마움이 아니라 맥빠짐이었다.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기분이 안 좋은 거라서 좀 신경 쓰였다. 정리가 안 돼서 적어둔다.
안 보였던 게 아니다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내가 이걸 몰랐나.
아니다. 다 보였다. 시크릿이 노출돼 있는 것도, 컨테이너 구성이 이상한 것도, 헬스체크가 없어서 죽어도 모르는 것도.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안 시켰다.
처음엔 리소스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백엔드 한 명, QA는 버그 재현도 못 하는 상태, 나는 규제 대응으로 계속 불려 다니는 중. 이 조건에서 인프라 개편을 지시하는 건 실행 불가능한 지시니까. 이건 사실이고 지금도 맞다고 생각한다.
근데 며칠 더 생각해보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진짜 이유
프로덕트를 하다 보면 내가 보는 것과 실무자가 보는 게 다르다.
보통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더 잘 보이는 게 있어서 그런 건데, 가끔은 내가 더 많이 보는 경우가 있다. 여러 쪽을 동시에 보고 있으니까 어디서 뭐가 터질지가 먼저 보인다. 이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리가 그런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가 보인다고 해서 남도 보이는 게 아니다. 특히 지금 당장 안 아픈 것들, 예를 들어 헬스체크 같은 건 없어도 오늘 아무 일 안 일어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가 생겼다는 걸 몰라서 늦게 대응하게 되는 건데, 그건 아직 안 일어난 일이다. 안 일어난 일을 근거로 지금 일을 미루자고 설득해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 붙는다. 그 작업들은 대부분 실무자가 안 해본 것들이다. 시크릿 관리 체계를 옮기는 거나 관측을 붙이는 건 기능 개발이랑 다른 영역이다. 러닝커브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요청하는 건 “이거 해주세요”가 아니라 “지금 안 아픈 문제를 위해, 안 해본 걸 배워가면서, 지금 하고 있는 걸 미루고 해주세요”가 된다.
이게 피곤하다.
그래서 안 시켰다. 리소스가 없어서 미룬 것도 맞는데, 그 설득을 할 기력이 없어서 미룬 것도 맞다. 둘 다였다. 근데 나는 앞엣것만 가지고 정리하고 있었다.
두 개는 다른 문제다
이 둘을 붙여놓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리소스가 없어서 미룬 거면 리소스가 생기면 해결된다. 사람이 늘거나 급한 일이 끝나면 자동으로 풀린다. 기다리는 게 맞는 판단이다.
설득 비용 때문에 미룬 거면 기다려도 안 풀린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진다. 부채가 쌓여 있으면 개편 범위가 커지고, 범위가 커지면 설득해야 할 게 더 많아지니까.
겉으로는 똑같이 “지금은 아니다”로 보인다. 나 자신한테도 똑같이 보인다. 리소스 부족은 정당한 이유고 피곤함은 아닌 것 같으니까, 머리가 알아서 앞엣걸로 정리해준다. 나는 몇 달 동안 그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저쪽에는 왜 됐나
이번 주에 맥빠졌던 건 그 작업들이 됐다는 게 아니라, 내가 몇 주 부탁해도 안 되던 게 외부 자문이 말하니까 바로 됐다는 거였다.
처음엔 직급 차이라고 생각했다. 6년차 PM이 말하는 거랑 CTO급으로 들어온 사람이 말하는 건 같은 문장도 무게가 다르니까. 이건 맞는 말이긴 한데 좀 게으른 설명이다.
더 정확하게 보면 이렇다. 그 사람은 설득 비용을 안 냈다.
나는 단건으로 밀었다. 시크릿 옮겨달라, 헬스체크 넣어달라. 그러면 그때마다 왜 지금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 사람은 인프라를 전반적으로 손보는 큰 계획 안에 그걸 넣어서 밀었다. 그러면 개별 항목에 대한 납득이 필요 없다. 이미 통과된 계획을 실행하는 게 되니까.
같은 작업인데 하나는 부탁이고 하나는 계획의 일부다. 부탁은 매번 우선순위 경쟁을 하고, 계획은 안 한다.
그러니까 내가 부러웠던 건 그 사람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안 내도 되는 비용이었다. 영향력이라는 게 결국 이 비용이 얼마나 싼가의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직급만의 문제는 아니다. 묶어서 미는 건 내가 할 수도 있었다. 나는 필요한 걸 필요할 때 정확하게 요청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왔는데, 조직에서는 작은 걸 여러 번 미는 것보다 큰 덩어리로 한 번 미는 게 잘 통할 때가 있다. 알고는 있었는데 안 쓰고 있었다.
그럼 뭘 했어야 했나
이 구조를 인정하고 나면 선택지가 셋밖에 없다.
직접 한다. 그러면 리소스 오판이다. 그리고 다음에도 내가 해야 한다.
지시한다. 설득 없이 시키면 실행이 안 되거나 품질이 안 나온다. 안 해본 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하면 그냥 형태만 만들어진다.
미룬다. 부채가 쌓인다.
셋 다 비용이 있고 공짜는 없다. 나는 세 번째를 골랐고 그건 그 상황에서 합리적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다만 세 번째를 고를 때 반드시 붙어야 하는 게 있었다. 미뤘다는 사실과 그 근거를 남기는 것.
미룬 건 몇 개는 위에 올렸고 몇 개는 안 올렸다. 올린 것들은 지금 “예측한 대로 됐네”가 되고, 안 올린 것들은 “왜 그동안 안 했지”가 된다. 같은 판단이고 같은 근거였는데 기록이 있냐 없냐로 평가가 뒤집힌다.
전에 평가 얘기를 쓰면서 이런 문장을 적었다. 잘 되면 안 보이고 안 되면 안 한 걸로 보인다고. 그때는 사람 얘기였고 이번엔 기술 부채인데 구조는 같다. 판단하는 것과 판단했다는 사실이 남는 건 별개고, 후자가 없으면 앞엣건 없었던 일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뭘 하기로 한 건 적고 뭘 안 하기로 한 건 안 적어왔다. 근데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건 대체로 후자다.
한 가지 자신 없는 것
아직 못 가른 게 있다.
그때 내가 미룬 게 정말 리소스 때문이었나, 아니면 설득이 피곤해서였나. 지금도 구분이 안 된다.
둘 다였다고 쓰긴 했는데, 비율을 모르겠다. 리소스가 충분했으면 시켰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사람이 두 배였어도 “지금 안 아픈 건데 굳이 지금?“이라는 반응을 예상하면 같은 자리에서 멈췄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리소스 문제면 내가 할 게 없고 설득 문제면 내가 할 게 있기 때문이다. 앞엣걸로 정리해두면 마음은 편한데 아무것도 안 바뀐다.
그리고 나는 대체로 마음 편한 쪽으로 정리하는 편인 것 같다. 이걸 이번에 알았다.
그래서 바꿀 것
돌아가도 지시는 안 한다. 그건 그대로다.
두 개를 바꾸려고 한다.
미루는 판단은 근거와 함께 남긴다. 지금 안 하는 이유, 언제쯤 해야 한다고 보는지, 안 하면 뭐가 쌓이는지. 한 문단이면 된다. 그거 하나만 있었어도 이번 주에 이 감정이 안 생겼을 것 같다.
그리고 미룰 때 이유를 하나로 적지 않기. 리소스인지 설득 비용인지 나눠서 적으면 최소한 나중에 내가 볼 수는 있다. 지금은 그것도 안 돼서 몇 달 지나서야 알았다.
아직도 그때의 비율은 모르겠다. 리소스가 70이었는지, 설득 비용이 30이었는지. 아마 끝까지 정확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다음에는 적어보려고 한다. 지금 안 하는 이유가 리소스인지, 설득인지, 둘 다인지.
그래야 몇 달 뒤에 다시 봤을 때, 내가 그때 정말 못 했던 건지 그냥 하기 싫었던 건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니까.